경제, 일상

해가 지지 않는 영국의 성장 과정

드리프트 2021. 7. 16. 10:44
728x170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린 적이 있습니다.

 

 세계 전역에 식민지를 두고 있어 해가 지더라도 식민지 어딘가에서는 해가 떠 있을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실 식민지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히 세기도 어렵습니다.

 

어느 시기를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숫자가 달라져서입니다.

 

일례로 방글라데시와 파키스탄, 인도 등은 영국 식민지 시절에 모두 한나라였습니다.

 

20세기 초를 기준으로 한다면 영국의 식민지로 있다가 독립한 국가는 60여 개국에 달합니다.

 

20세기 이전까지 영국은 분명 세계 최강의 국가였습니다.

 

영국이 이처럼 세계 최강의 국가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특허(Patent) 제도를 주목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17세기까지 영국은 산업혁명을 이룰 만한 제조와 기술 여건이 없었던 국가입니다.

 

 오히려 성숙한 제조 여건을 갖춘 곳은 유럽 대륙의 여러 국가들이었습니다.

 

 유럽은 시계 공학과 철 가공업 등 제조업이 크게 발달하였습니다.

 

 당시 시계는 오늘날 스마트폰에 비견될 만큼 중요한 도구이자 일상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다준 물건이었습니다.

 

 이에 반해 영국은 농업 국가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1623년 영국이 자국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기술자들의 기술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특허 제도를 전격 도입합니다.

 

 그러자 유럽 각지에 기술자들이 자신의 기술의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다는 신념 아래 영국으로 모여들고 시작합니다.

 

 이러한 기술자들의 역량이 집결되어 결국 영국은 산업혁명을 촉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영국은 세계 최강 국가로 발돋움하게 됩니다.

 

 산업혁명은 영국이 나라 밖의 힘을 성장의 발판으로 활용한 첫 번째 사건이었습니다.

 

 영국이 특허 제도를 강화하여 세계 최강 국가의 반열에 오른 것을 보고 이를 벤치마킹하는 나라들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독일과 미국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독일은 전 세계적으로 실용신안 제도를 처음 도입한 나라입니다.

 

 특허와 실용신안을 쉽게 구분 하자면, 특허는 이전까지 없었던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냈을 때 부여가 됩니다.

 

 즉 무에서 유를 만들어냈을 때 부여되는 훈장입니다.

 

 이에 반해 실용신안은 이전에 존재하고 있던 대상을 개선하는 범주에 해당합니다.

 

 즉 기존에 A라는 제품을 A’ 내지 A’’ 정도로 개선할 경우 실용신안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은 유럽 각지의 많은 엔지니어를 독일 지역으로 유입시키기 위한 유인책으로 그때까지 독자적인 창작물로 인정해 주지 않았던 대상들을 실용신안이라는 이름 아래 경제적 가치를 인정해 주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독일은 이러한 노력에 힘입어 오늘날까지 세계 최고의 제조강국으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영국의 아들 격인 나라인 미국 역시 영국을 벤치마킹 한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미국은 헌법 1조에 특허 보호를 천명하고 있는 보기 드문 나라입니다.

 

 헌법 1조는 해당 국가가 숭고하고 지켜야 만 할 가치를 담고 있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그러한 헌법 1조에 미국은 정확히 헌법 1조 8절 8항에 특허 보호 제도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버지 나라 격인 영국이 특허 제도를 활용해 세계 최강 국가의 반열에 올라갈 수 있었음을 인식하고 미국의 발전을 위해서는 유럽 각지에 역량 있는 기술자를 유치해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산업혁명으로 경제력을 갖춘 영국은 여느 서구 열광 국가들처럼 식민지 점령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영국의 식민지 경영 방식은 다른 국가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프랑스는 식민지에 대한 직접적인 통치 방식을 선호했던 대표적인 국가였습니다.

 

 그래서 식민지 현장에 프랑스 본국 인력을 직접 파견하여 관리감독을 하게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프랑스 식민지는 프랑스에 대한 적개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스페인의 식민지 경영 방식은 신분제를 이용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스페인 본국 출신은 최상위 층으로 그리고 식민지에서 태어난 스페인 사람에게는 그다음 지위를 부여하는 방식입니다.

 

 다시 스페인 사람과 원주민 간에 태어난 사람들을 또다시 그다음 지위를  부여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스페인 각 지역의 식민지를 통치하였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달랐습니다.

 

 영국은 자신들이 식민지를 직접 통치하지 않는 대신 식민지 원주민 중 우호 세력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원주민 통치자 뒤에서 이들을 지휘하는 간접적인 방식을 선호하는 것입니다.

 

 식민지인 중에 우수한 인력을 영국에서 교육시켜 고위 관직에  활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영국의 통치 방식은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 후에도 영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영국의 식민지 국가들은 신생 독립국이 된 후에도 영 연방 국가로 남아 긴밀한 경제적, 정치적 교류를 해 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4년마다 영 연방 국가 간에 올림픽을 개최하며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는가 하면 1980년대 후반까지 영 연방 국가 간에는 여행이나 유학 취업 시 비자가 면제되고 많은 품목에 무관세가 적용됐습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영국이 국제사회에서 적지 않은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근거가 됐습니다.

 

 이번에도 영국은 영국 밖의 힘을 활용해 적지 않은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던 겁니다.

 

 영국에서 금융업이 발달한 배경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특히 뉴욕을 세계 중심지라 부르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실 뉴욕은 미국 금융시장의 중심지이지 세계 금융의 중심지라고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면도 있습니다.

 

 자국 내 시장 만으로도 충분한 기회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이 뉴욕시장 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영국의 수도 런던은 진정한 국제 금융 중심지라 불릴 말합니다.

 

 영국은 세계 외환 주식 및 기타 파생상품의 30~50% 퍼센트 정도가 거래되고 있습니다.

 

 런던 증시는 2015년까지 미국 뉴욕 증권 거래소를 제치고 세계 1위의 증시였습니다.

 

 영국에서 국제 금융지 역할을 수행하는 거점 지역은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이라는 금융 특구입니다.

 

 

 이곳은 런던의 32개 구 중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특구인데, 시티 오브 런던(City of London)에서 세계적인 기업과 부호들이 선호할 만한 느슨한 세제를 적용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세제 배경 또한 대영제국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영국 기업인들은 대부분 식민지에 거주하며 식민지를 기반으로 수익을 거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식민지에서 거둬들인 수익을 영국으로 반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에 영국은 식민지에 거주하는 영국인이 현지에서 벌어들인 수익에 대해 세금을 유예해주는 제도를 도입합니다.

 

 이 제도는 최근까지 비거주지 규정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규정은 영국에 살더라도 본인의 실제 거주지가 영국 외 다른 나라라고 신고하면 해당 지역에서 벌어들인 수익에 대한 세금을 유예해 주는 제도입니다.

 

 최근에는 영국 부유층이 이 법을 악용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습니다.

 

 집에서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호텔에서 생활하며 해외에 거주하는 것처럼 속인 뒤 세금을 유예받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느슨한 세제는 영 연방 국가들의 부호들을 비롯해서 러시아 재벌, 일본과 중국 부호들까지 전 세계 부유층의 돈을 유치하는데 크게 기여해 왔습니다.

 

 기업들에게 적용되는 세제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스타벅스는 1998년 영국에 진출한 이후 30억 파운드 약 4조 4천 억 원의 수익을 거두고 있었지만 납세 액은 불과 150억 원에 불과했습니다.

 

 대부분의 수익을 조세 피난처로 숨기고 적자를 보인 것처럼 해 세금을 내지 않는 해도 많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조세 제도가 점차 강화되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여전히 영국은 느슨한 규제 환경으로 여러 기업들의 유입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영국이 전 세계에서 식민지를 구축하고 대영제국을 경영하면서 얻게 된 수혜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영국 런던은 전 세계에서 가장 박물관과 미술관을 많이 보유한 도시 중 하나입니다.

 

 2019년 기준으로 서울시 등록 박물관, 미술관 수가 175개소인데 반에 영국 런던은 215개에 해당합니다.

 

 뿐만 아니라 영국은 이들 박물관과 미술관을 전부 무료로 개방하고 있습니다.

 

 영국이 이처럼 많은 박물관을 보유하고 있고 이를 무료로 개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전시품 대부분이 전 세계 식민지로부터 약탈 해온 물건들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을 대표하는 박물관들만 보더라도 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중 세계 3대 미술관, 박물관으로 꼽히는 대영박물관은 원래 개인 소장품을 전시하던 작은 박물관이였습니다.

 

 그러다 1753년 의사인 한스 슬론이 자신의 소장품 8만 여점을 기반으로 박물관을 국가에 기증하면서 세계 최초의 공공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그 뒤로 세계 각지에서 약탈해 온 수장품이 점점 늘어나게 되면서 테마를 중심으로 한 전시관 건립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업가이자 수집가였던 줄리어스 앤거스틴(John Julius Angerstein)의 개인 소장품을 국가가 매입하면서 내셔널 갤러리를 개관하게 됩니다.

 

 내셔널 갤러리는 현재 중세 말기부터 19세기 말기까지의 회화 작품 23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영국 자연사 박물관 역시 전 세계 멸종 동물과 토착 생물을 박제하여 전시하고 있습니다.

 

 대영박물관에 보관 중인 그리스 유물 중에는 파르테논 신전의 대리석 조각품인 엘긴 마블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그리스가 오스만 제국의 통치 아래 있을 때 오스만 제국에 영국 대사로 파견 간 토머스 엘긴이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에 있던 대리석 조각품 들을 런던으로 옮겨 왔던 것입니다.

 

 조각품의 이름도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겁니다.

 

엘긴 마블을 둘러싸고 그리스와 영국은 오랜 시간 갈등을 빚어 왔습니다.

 

엘긴 마블에 대해 그리스는 영국 정부가 일방적으로 훔쳐 갔다며  줄기차게 반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반면 영국 정부는 엘긴 대사가 오스만 제국과의 합법적 계약을 통해 획득했다고 주장하며 첨예하게 맞서고 있습니다.

 

 모아이 상으로 유명한 남태평양의 이스터섬 역시 대영박물관을 상대로 석상 반환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스터섬 원주민이 서기 6세기에서 15세기경 현무암을 깎아 만든 사람 형태의 거대 석상은 1868년 영국 군인들이 무단으로 가져가 당시 빅토리아 여왕에게 바쳐졌습니다.

 

 이밖에도 이집트,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각 국가들을 비롯해 캐나다, 멕시코, 중국, 동남아 등 여러 국가들이 영국 정부로 하여금 자신들의 문화재를 돌려줄 것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현재 대영박물관은 고려 청자와  조선 백자 등 우리나라 유물 도 200여 점 이상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까지 이들 각국의 요청에 대한 영국 정부의 입장은 철저히 부정적입니다.

 

 그나마 일부 국가 하고는 임대 형태로 돌려주는 방식에 대해 논의하고 있는 수준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을 방문한 해외 관광객들이 대영박물관에 들려 선조들의 유물을 관람하고자 할 때 유료로 돈을 받는 것은 국제적으로 용인받기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많은 영국 관광객들이 공공 박물관과 미술관이 무료라는 점을 마냥 좋아만 해야 할 것은 아닌 듯 합니다.

 

영국인들이 전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 들고 온 것은 각 국가의 문화재만이 아닙니다.

 

 세계 각지로부터 가져온 여러 문화권을 대표하는 문화재들은 영국인들의 수준 높은 문화예술 의식을 갖게 된 커다란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영국은 2차 세계대전 직후 피폐해진 국민들의 삶을 위안해주고 주저앉은 문화 예술인들의 생계를 지원하기 위한 음악예술진흥위원회를 설립합니다.

 

 보통 국가들은 전후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건설 토목 치안 등의 분야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영국은 1946년 음악예술진흥위원회를 예술 위원회로 개편한 뒤 지방 소도시를 찾아가 음악회,  공연 등의 예술 활동을 피해가 복구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전개하기 시작합니다.

 

 이는 영국인들이 문화예술을 얼마나 삶에 밀접하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음악예술진흥위원회의 초대 회장을 전설적인 경제학자 케인즈(John Maynard Keynes)가 맡았다는 점입니다.

 

 

 당시 케인즈는 국가의 공적자금을 바탕으로 문화예술 분야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문화 예술인들의 작품 활동에 국가가 적극 개입해서는 안 되며 팔 길이만큼 거리를 두고 가야 한다며 소위 팔 길이 원칙(Arm’s length principle)을 주장했습니다.

 

 그렇다고 영국인들이 문화예술을 단순히 교육적이고 정서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1970년대 후반 영국 경제가 극심하게 어려워져 IMF 원조를 받을 만큼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은 바 있습니다.

 

 이때 당시 영국 수상인 대처는 영국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상업적인 문화예술이라 할 수 있는 디자인에 주목합니다.

 

 

 대처 수상은 당시 “디자인 아니면 쇠락(Design or Decline!)"이라는 슬로건으로 강력한 디자인 진흥책을  시행해 영국의 위기를 극복한 바 있습니다.

 

 대처 수상이 상업 미술이라 할 수 있는 디자인에 주목하게 된 배경 역시 영국의 대영제국 시절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영국인은 인도 식민지를 기반으로 세계 각지에 섬유를 수출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력을 유지해  왔습니다.

 

 하지만 프랑스를 비롯한 여타 서구 열광 국가 역시 식민지에서 생산된 면화를 바탕으로 영국을 추격해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영국은 자신들의 경쟁 우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으로 디자인에 주목합니다.

 

19세기 중엽의 총리였던 로버트 필(Robert Peel)이 영국과 프랑스 섬유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디자인 진흥 방안을 제시했고, 이를 계기로 디자인 박물관과 디자인 시범학교가 설립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영국은 자국의 섬유 산업 경쟁력이 취약해졌을 때 디자인이 섬유 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일 뿐만 아니라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중요한 수단이었음을 확인한 것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 영국이 설립한 것은 음악예술진흥위원회만이 아닙니다.

 

 윈스턴 처칠은 1944년 산업디자인위원회를 설립했습니다.

 

 디자인을 통해 전후 주저앉은 영국 산업을 복구하고자 추진한 것입니다.

 

 이를 위해 자국 내 우수 디자인을 육성하기 위해 1945년 굿 디자인 운동을 전개합니다.

 

 디자인에 주목한 것은 처칠과 대처만이 아닙니다.

 

 토니 블레어 총리 역시 영국의 미래를 이끌 신성장 동력으로 디자인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창조적 영국(Creative UK)” 캠페인과 “멋진 영국(Cool Britannia)”이라는 슬로건 아래 공공 디자인 우선 정책을 펼칩니다.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도 대처 수상 시절의 영국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은 면이 많습니다.

 

 기존의 주력 산업군은 경쟁력을 점차 잃어가고 있으며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인구 절벽에 혁신 역량도 미약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에서도 디자인 분야에 주목할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ICT를 비롯한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일련의 산업군들은 대부분 와해성 혁신을 기반으로 성장하는 산업들입니다.

 

 즉 기존의 기술과 질서가 일순간 부정되고 전혀 새로운 방법론을 도입해 성장해가는 산업들입니다.

 

 이러한 산업군들은 순발력과 학습력, 호기심 등이 줄어드는 고령층 등이 큰 성과를 내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디자인 분야는 다릅니다.

 

 디자인 역량은 새로운 감각 못지않게 다양한 경험과 시행착오 끝에 도출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과학기술 분야의 핵심 인재는 통상적으로 30에서 40대 인력들이 주축인 반면 디자인 분야의 경우에는 10대에서 70대 때까지 전 범위에 걸쳐서 특히 디자인 분야의 대가로 인정받는 사람들 대부분은 고령층인 경우가 많습니다.

 

 랄프 로렌(Ralph Lauren)은 39년생이고,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만 하더라도 31년 생입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Giorgio Armani) 역시 34년생입니다.

 

 이들 모두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에 있는 디자이너들입니다.

 

ICT  분야에서는 1930년대생이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한다는 것을 아마 상상하기 조차 어려울 것입니다.

 

 부가가치 측면에서도 디자인은 여타 분야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부가가치 측면에서 일반 R&D 투자 대비 디자인에 투자했을 때 세 배 이상 높은 부가가치를 달성하는 것으로 확인이 됐습니다.

 

 투자 대비 매출 증대 효과 측면에서도 일반 R&D 투자가 다섯 배 수준의 매출 증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 디자인 산업의 경우 14.4배 수준으로 확인된 바 있습니다.

 

 일자리 창출 효과 측면에서도 디자인 분야는 여타 산업 분야보다 월등한 효과를 갖고 있습니다.

 

 한국은행 고용 유발 계수 기준으로 자동차는 7.9, 반도체는 4.8 수준인데 반해 디자인 분야의 고용유발 계수는 16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디자인 역량 강화는 여러 산업에 적용되면서 제조업, 서비스업, 문화산업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높은 파급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힙니다.

 

 이상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우리가 지금 디자인 분야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충분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사회적 관심이 이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제는 디자인을 결과물 중심으로 사고하는 산업디자인적 관점보다는 디자인 자체를 산업으로 인식하는 디자인 산업적 관점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다시 영국 얘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상에서 열거한 바와 같이 오늘 영국의 위상과 성과는 대영제국 시절을 기반으로 해서 형성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영국은 매 시기마다 영국 밖의 상황을 적절히 활용하면서 진화 발전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또 다른 양상을 보여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습니다.

 

 바로 브렉시트(Brexit)를 통해 스스로 고립을 선택한 것이 그것입니다.

 

 

 브렉시트로 영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되었고 EU 회원국 지위가 상실될 것으로 전망되자 영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많은 다국적 기업들은 영국을 떠나 EU영내로 이전하는 추세입니다.

 

 이로 인해 최근 영국 경제는 기업 투자 부진이 지속되고 가계의 가처분 소득도 하락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IMF, 월드뱅크 등 주요 국제기구의 전망 역시 브렉시트 이후 영국 경제 성장 전망치를 하향 조정해 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위기에 대처하는 영국의 해법이 이전의 방식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영국 정부는 무역에 드는 비용과 절차를 없애고 세제 혜택을 부여하며 자유롭게 무역을 할 수 있는 자유무역항 제도를 적극 도입하려고 시도하고 있습니다.

 

 법인세를 낮춰 아일랜드와 함께 유럽 내 최저 수준의 법인세 보유국임을 강조하며 역외 기업들의 투자를 적극 유치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산업혁명을 이끈 국가인 만큼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적지 않은 성과를 내기 위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산업 분야는 달라졌을지 모르겠지만 이들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전략은 17세기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영국 정부는 외국 기업이나 해외 엔지니어가 영국에서 혁신 아이디어를 상업화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특허로 인해 발생하는 수익에 대해서는 인하된 법인세율인 10%만 적용하고 있습니다.

 

 산업혁명의 원동력이 된 17세기의 특허 제도를 연상케 하는 발상이죠.

 

 또한 해외 우수 인재와 스타트업을 유치하기 위해 2019년 3월부터 새로운 비자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일명 혁신가 비자(innovator visa)로 영국에서 사업체를 운영할 계획이 있는 사람들에게 발급되는 비자입니다.

 

 또한 영국에서 창업 시 보증 기관이 해당 사업 아이디어를 검토한 후 비자를 발급해 주는 스타트업 비자 제도도 도입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국 내 첨단 금융 시스템을 통해 창업 활성화에 기여하고자 벤처캐피털, 크라우드펀딩, 에인절 투자자가 적극 육성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영국 왕실 또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앤드류 왕자가 설립한 비영리 재단인 피치 앤 팰리스는 지난 5년간 62개국에서 120여 차례 스타트업 피칭 대회를 개최하여 약 800개 기업을 후원하기로 결정한 바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런던은 2017년 글로벌, 도시별 스타트업 생태계 비교해서 실리콘밸리,  뉴욕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한 바 있습니다.

 

 앞서 열거한 바 같이 영국이란 나라는 위기 때마다 늘 외부의 힘을 빌려 위기를 극복해 왔습니다.

 

 최근 영국이 브렉시트 이후 직면하게 될 새로운 위기에 있어서 외부의 힘을 활용해 슬기롭게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특히 코로나19 상황에서 영국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났던 상황이었습니다.

 

 이 상황에서도 영국이 과거와 같이 외부의 힘을 어떻게 활용해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지 한 번 지켜보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그리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