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16년 집념이 담긴 신작 어쩔 수가 없다 드디어 베일을 벗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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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욱 감독의 16년 집념이 담긴 신작 어쩔 수가 없다 드디어 베일을 벗다

박찬욱 감독이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1997년 스릴러 소설 '액스(The Ax)'를 영화화하기 위해 무려 10년 넘게 공을 들여왔는데요.


여러 번의 제작 방향 수정을 거쳐 마침내 세상에 나온 이 작품은 놀랍게도 지금 이 시대의 모습과 아주 완벽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처음에는 의아할 수도 있지만 사실 구조조정이 일상화된 90년대 미국 소설이 원작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납득이 가거든요.


박 감독은 이미 2009년부터 이 책을 영화로 만들 계획을 세웠고 캐나다 영화인들과 영어 영화로 개발하다가 다시 배경을 한국으로 옮겨 완성했습니다.


이 영화는 시간이 흘러 낡아버린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90년대 미국이나 지금의 한국 어디서든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요.

 



최근 Hulu를 통해 공개된 '어쩔 수가 없다(No Other Choice)'가 많은 이들의 가슴에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극 중 유만수(이병헌)는 사양 산업인 제지 분야의 전문가이지만 하루아침에 해고를 당하며 가족의 생계를 걱정하는 처지에 놓이는데요.


그의 아내 이미리(손예진)가 치과 조무사로 일하며 힘을 보태지만 중산층의 삶을 유지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두 아이와 강아지 두 마리 그리고 넓은 집을 지키기 위해 절박해진 만수는 아주 기괴하고도 잔인한 계획을 세우게 되거든요.


자신이 원하는 일자리를 얻기 위해 가짜 구인 광고를 내서 경쟁자들의 정보를 가로챈 뒤 그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일종의 살인적인 '인사 담당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만수는 본래 영혼 없는 살인마가 아니지만 영화의 제목처럼 정말 '어쩔 수가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됩니다.



박찬욱 감독 특유의 블랙 코미디와 서스펜스가 돋보이는 이 영화는 결코 가볍지 않은 무게감을 전달하는데요.


전작인 '헤어질 결심'이나 '아가씨'처럼 세련된 미장센과 대담한 비주얼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관객을 단숨에 압도합니다.


살인 사건들이 워낙 정교하게 그려지다 보니 러닝타임이 2시간을 훌쩍 넘기지만 감독의 연출력이 정점에 달해 지루할 틈이 없거든요.



히치콕 감독의 코미디와 스릴러를 절묘하게 섞어놓은 듯한 전개는 보는 내내 긴장감과 묘한 웃음을 동시에 자아내는데요.


특히 이병헌과 손예진은 서로를 지지하면서도 각자의 방식으로 절박함을 표현하는 부부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소화해 냈습니다.


만수가 경쟁자를 감시하고 우연히 그의 아내를 만나는 등의 소동극은 코미디와 서스펜스가 결합된 한 편의 교향곡처럼 느껴지거든요.

영화는 단순히 기술적인 성취를 넘어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모품으로 전락한 노동자들의 현실을 아주 서늘하게 꼬집는데요.


인공지능(AI)이 도입되고 노동자에게 적대적인 자본주의 환경 속에서 인물들이 느끼는 압박감은 우리 모두의 현실과 다르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파괴해 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결국 '자기 보존'으로 위장한 '자기 파멸'의 초상화와도 같거든요.


박찬욱 감독은 이 지독한 경제적 아수라장을 아주 흥미진진한 구경거리로 만들어내는 놀라운 마법을 부렸는데요.


비록 그 결말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지라도 지금 당장 우리가 감상해야 할 가장 시의적절한 스릴러임은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