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가 40억짜리 차에 6기통을 넣은 진짜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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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가 40억짜리 차에 6기통을 넣은 진짜 속사정

페라리라는 브랜드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귀에 맴도는 소리는 단연코 12기통 자연흡기 엔진의 날카로운 포효입니다.

그런데 최근 공개된 페라리의 새로운 대장급 하이퍼카 ‘F80’이 이 오랜 성공 공식을 보란 듯이 깨버리며 전 세계 자동차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거든요.

라페라리의 뒤를 잇는 이 엄청난 모델의 심장에 페라리의 상징인 V12가 아닌, V6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이 탑재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페라리 측에서는 이번 결정이 단순한 다운사이징이 아니라, 기술적 진보를 위한 필연적인 선택이었다고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데요.

오늘은 페라리가 왜 스스로의 상징을 버리면서까지 6기통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이에 대해 팬들은 왜 그토록 아쉬워하는지 그 속사정을 자세히 들여다보겠습니다.

성능 앞에서는 12기통도 한 수 아래다

 

 

페라리 F80의 프로젝트 매니저는 이번 V6 엔진 탑재에 대해 "의심할 여지 없이 오늘날에는 V6가 V12보다 우월하다"라고 못 박았습니다.

이 자신감의 근거는 바로 세계에서 가장 가혹한 레이스로 불리는 ‘르망 24시’ 우승 경력에서 나오거든요.

페라리는 499P 레이스카를 통해 르망 무대를 연달아 제패했는데, 바로 그 우승의 주역이 3.0리터 V6 트윈 터보 엔진이었기 때문입니다.

레이스 트랙에서 이미 내구성과 출력, 효율성까지 모든 것을 입증한 엔진을 도로용 하이퍼카에 이식했으니 성능 면에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실제로 이 엔진은 일반적인 V6 엔진과 달리 뱅크각을 120도로 쫙 벌려서 설계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인데요.

엔진을 납작하게 눌러 무게 중심을 바닥까지 끌어내림으로써, 코너링 성능과 공기역학적 패키징 효율을 물리적으로 12기통이 따라올 수 없는 경지에 올려놓았습니다.

페라리 개발팀 내부에서는 이 엔진을 두고 ‘피콜로 V12(Piccolo V12)’, 즉 ‘작은 12기통’이라는 애칭으로 불렀을 정도로 사운드 튜닝에도 엄청난 공을 들였거든요.

120도의 뱅크각 덕분에 점화 순서와 배기음의 파장이 12기통과 유사한 특성을 보이도록 설계해, 6기통 특유의 거친 소음 대신 매끄러운 고음을 만들어내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카시오가 롤렉스보다 정확하다고 롤렉스를 안 살까

하지만 수십 년간 페라리의 붉은색 엔진 헤드를 동경해온 팬들의 입장은 기술적인 수치와는 조금 다릅니다.

비유하자면 카시오 전자시계가 롤렉스 오토매틱 시계보다 시간은 훨씬 더 정확하게 맞지만, 우리가 수천만 원을 주고 롤렉스를 사는 이유는 기능이 아닌 ‘감성’ 때문이거든요.

0.1초를 다투는 레이스카가 아니라 도로 위를 달리는 예술품이라면, 그에 걸맞은 웅장한 심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꽤 설득력이 있습니다.

실제로 V6 엔진은 구조적으로 V12 엔진이 주는 그 특유의 부드러운 회전 질감과 가슴을 울리는 배기음을 완벽하게 대체하기는 어렵다는 평이 지배적인데요.

특히 최근 환경 규제로 인해 배기음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에서, 기통 수까지 줄어든다는 것은 팬들에게 있어 페라리의 영혼이 거세당하는 듯한 상실감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실내에서는 사운드 제너레이터를 통해 그럴듯한 소리를 들려줄지 몰라도, 밖에서 듣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고성능 청소기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끊이지 않고 있거든요.

메르세데스-AMG가 C63 모델에서 V8 엔진을 버리고 4기통 하이브리드를 선택했다가 판매량에서 곤욕을 치른 사례가 팬들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는 상황입니다.

전설의 F40도 사실은 8기통이었다

그런데 무조건 V12여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페라리가 억울해할 만한 역사적인 반전 팩트가 하나 있습니다.

페라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걸작이자, 엔초 페라리의 유작으로 추앙받는 전설의 슈퍼카 ‘F40’ 역시 12기통이 아닌 8기통 터보 엔진을 심장으로 썼다는 점입니다.

당시에도 페라리는 12기통이라는 상징성보다는 경량화와 폭발적인 터보 기술을 통해 당대 최고의 성능을 내는 데 집중했거든요.

F50이나 엔초 페라리, 라페라리 같은 모델들이 12기통을 고수하며 플래그십의 계보를 이어온 것은 사실이지만, 페라리의 본질은 결국 ‘가장 빠른 차’를 만드는 데 있다는 것을 F40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즉, 이번 F80의 V6 선택 역시 F40의 개발 철학처럼 현재 기술로 구현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을 택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는데요.

페라리 입장에서는 "우리는 F40 때부터 원래 성능을 위해서라면 기통 수에 구애받지 않았다"라고 항변할 수 있는 강력한 명분이 있는 셈입니다.

가장 뚱뚱한 차가 가장 클래식한 심장을 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F80의 V6 탑재가 유독 아쉬움과 아이러니를 남기는 결정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페라리 브랜드 역사상 최초의 SUV 모델인 ‘푸로산게’에는 그토록 귀하고 상징적인 자연흡기 12기통 엔진을 보란 듯이 넣어줬기 때문입니다.

"SUV가 무슨 페라리냐", "페라리가 돈독이 올랐다"라는 비난을 잠재우기 위해, 가장 전통적이고 권위 있는 엔진을 SUV에게 내어주는 전략적 선택을 했거든요.

정작 브랜드의 기술력을 총동원해 정점을 찍어야 할 하이퍼카인 F80은 효율을 위해 6기통을 택하고, 가장 무거우며 대중적인 성격의 SUV는 12기통 감성을 챙기는 이 상황이 팬들에게는 못내 씁쓸하게 다가옵니다.

결국 페라리도 시대의 흐름인 전동화와 다운사이징을 거스를 수는 없었지만, 그 적용 대상을 두고 팬들의 기대와는 조금 엇박자를 탄 것이 아니냐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과연 F80이 도로 위에 본격적으로 풀렸을 때, 이 모든 논란을 압도적인 퍼포먼스와 드라이빙 감각으로 잠재울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앞으로의 큰 관전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