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리메이크 논란, '고전의 재해석'인가 '원작의 모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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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리메이크 논란, '고전의 재해석'인가 '원작의 모독'인가

최근 마고 로비와 제이콥 엘로디 주연의 영화 '폭풍의 언덕' 1차 예고편이 공개되며 인터넷이 그야말로 들썩였는데요.

세계적인 고전 명작의 새로운 영화화 소식, 그것도 할리우드에서 가장 핫한 두 배우의 만남이라니, 기대감이 폭발하는 건 당연했습니다.

감각적인 영상미와 매혹적인 배경음악은 그 기대에 불을 지폈죠.

하지만 온라인 반응은 단순히 '기대된다'는 말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원작의 오랜 팬들을 중심으로, 이건 우리가 알던 '폭풍의 언덕'이 아니라며 거대한 논쟁의 불이 붙어버렸거든요.

고딕 로맨스냐, 관능적 멜로드라마냐

가장 큰 충돌 지점은 바로 원작이 가진 '고딕 로맨스'라는 본질을 어떻게 해석했느냐에서 시작되는데요.

원작 소설은 황량하고 스산한 언덕을 배경으로 한 인물들의 파괴적이고 음울한 사랑을 다룬, 그야말로 '피폐미'의 정수입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광기 어리고 자기 파괴적일 수 있는지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이야기였죠.

하지만 공개된 예고편은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깁니다.

음울함과 광기 대신, 두 남녀의 관능적이고 섹슈얼한 긴장감을 전면에 내세웠거든요.

이를 두고 한쪽에선 '원작의 격정적인 감정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라며 옹호하지만, 다른 한쪽에선 '복잡한 심리 드라마를 단순한 성적 매력으로 채운, 영혼 없는 각색'이라며 비판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같다는 비아냥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결국 '파괴적인 영혼의 끌림'이라는 원작의 가치가, '감각적인 육체의 욕망'이라는 현대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한 셈입니다.

문학적 고증이냐, 할리우드 공식이냐

이 논쟁은 단순히 분위기를 넘어, 캐스팅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더라고요.

원작의 주인공 '히스클리프'는 출신을 알 수 없는 이방인으로, '어두운 피부'를 가졌다는 묘사가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이는 작품의 계급 갈등과 인종적 차별이라는 핵심 주제와 깊게 연결된 설정이죠.

그런데 이번 영화는 전형적인 백인 미남 배우인 제이콥 엘로디를 캐스팅했습니다.

캐서린 역시 원작의 야성적인 갈색 머리 아가씨가 아닌, 너무나도 할리우드적인 금발의 미녀 마고 로비가 연기하죠.

한쪽에선 '영화는 영화일 뿐, 스타 배우를 통해 새로운 매력을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한쪽에선 '이는 작품의 핵심 주제를 거세하고 할리우드의 미적 기준에 굴복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원작의 상징성을 존중하는 문학적 고증'이라는 가치와 '대중적 매력을 우선시하는 상업적 공식'이라는 가치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겁니다.

고전은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는가

그런데 진짜 고전 문학 팬들은 이 논쟁을 좀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보고 있거든요.

바로 '고전'이라는 유산을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오래전 작품이 지금의 관객에게도 유효하려면, 현대적인 감각으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창조되어야 한다는 시각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이번 영화는 '폭풍의 언덕'이라는 IP의 생명력을 연장하는 '창조적인 진화'인 셈이죠.

하지만 반대편에서는 '고전'의 가치는 그 시대의 공기와 분위기를 온전히 보존하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원작이 가진 특유의 황량함과 음울함을 걷어내고 세련된 영상미와 음악으로 포장하는 것은 원작에 대한 '모독'이라는 겁니다.

결국 '새로운 세대를 위한 끊임없는 재창조'라는 진보적 가치관과, '시간을 초월하는 원작의 가치 보존'이라는 전통적 가치관이 대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싸움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결국 '폭풍의 언덕' 리메이크 논쟁은 단순히 영화 한 편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섭니다.

원작의 격정을 '광기'로 해석할 것인가, '관능'으로 해석할 것인가.

작품의 '상징성'을 지킬 것인가, '상업성'을 좇을 것인가.

고전의 '보존'과 '진화'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지고 있는 거죠.

이토록 시끄러운 논쟁 자체가, '폭풍의 언덕'이 지닌 문학적 힘이 2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아닐까요.